[도서협찬] 5.18 푸른 눈의 증인
<5.18 푸른 눈의 증인> 폴 코트라이트, 한림출판사
한동안 1980년 광주에 대한 영상이나 내용을 보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에 대한 연상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고통스러웠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광주의 우체국 계단을 내려오다 만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에 이미 눈물이 차오른다.
과연 이 회고록을 다 읽을 수 있을까?
미국인이며 평화봉사단원으로 광주 바로 아랫동네 호혜원이라는 나병환자 정착촌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저자는 1980년 5월 25살의 나이로 한국 현대사의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 중 한 순간을 함께했다.
이 책은 저자가 겪은 1980년 5월 14일부터 5월 26일까지의 기록이다.
생각보다 담담하고 객관화해서 그 당시 겪었던 사실 그대로 묘사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보인다.
스스로를 '동그란 눈'의 외국인이라고 칭하는 한국명 '고성철'씨는 미국 아이다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으로 광주에서 겪을 일을 지금에서 와서 회고록으로 정리하게 된 것은 그 당시 광주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던 요청에 대한 결과이기도 하다.
본인이 거주했던 호혜원에서 광주로 들어갔다가 군인들에 의해 길이 막혀 광주에 머물며 보고 들은 것들과 이제는 영화 <택시운전수>로 잘 알려진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치페터의 통역으로 활동하며 도청과 전남대 병원과 같은 항쟁의 중심부를 취재하는 현장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기록해두었다.
총에 맞서 서있던 택시와 버스, 나이든 노인과 어린이의 죽음, 항쟁 지도부의 혼란과 시민들과 도시의 모습을 자신이 보았던대로 기록해 두었고 그 기록을 광주항쟁 40주년을 맞아 회고록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 등장했던 할머니부터 그 시간 속 광주시민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이 곳을 증언해달라는 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25살 젊은 청년에게 너무도 과중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1982년 한국을 떠난 후 안과의사가 되어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저명한 안과의사가 된 그였지만 그 시절을 기억과 자신에게 지워졌던 짐의 무게를 잊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도 느껴진다.
그 시기 광주에는 4명의 미국인 평화봉사단원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언론인의 취재나 광주 상황을 외부에 알리고 미국인이라는 신분적 우월을 이용해 사람들을 구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었고 그로 인해 항쟁이후 추방위협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저자인 폴 코트라이트외에도 광주에서 대학생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팀 원버그씨가 하와이대학교에서 발행하는 학국한 학술지에 "광주항쟁:내부의 시각 The Kwangju Uprising: An Inside View"라는 논문을 발표해 자신이 겪었던 것을 기록해 두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요즘 거론되는 광주항쟁에 대한 억측이나 유언비어에 가까운 잡음들을 보면서 슬픔이 들기도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경험인지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어린 시절 너무도 이상했던 티비뉴스로 처음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보았던 그 뉴스의 어색함을 깨고 진실을 알게되는 데까지 개인적으로는 10년정도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우리 역사에서 그것이 사실로 인정받는 것은 또 10년을 더 보내야 했다.
책에는 광주항쟁 당시 광주에 머물러 있던 어느 선교사가 남긴 또다른 일지를 담았다. 1980년 6월 초순에 작성되었다는 그 일지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있었다.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5.18사태만큼 한국 친구들을 자랑스럽게 느낀적이 없었다. 내가 한국인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은 이 기간 동안 완전히 바뀌었다. 그들은 의로운 일을 이룰 수있다면 그 어떤 값도 치르겠다는 의지를 보여 줬다. 특히 초기의 비극적인 사태 이후에 군인들이 보여 준 자제력과 당시에 떠돌던 엄청난 소무들을 듣고도 평정심을 유지한 시민들 모두에게 감동을 받았다."
올해 광주항쟁 기념식에는 진압군으로 참여했던 장교의 참회도 있었다고 한다.
일부에서 떠도는 악의적인 소문들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알려진 진실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책을 쓴 푸르고 동그란 눈을 가졌던 폴을 비롯해 그 시기 광주에 머물며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자 애썼던 팀, 주디, 데이브 네분의 평화봉사단에게 큰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 분들은 진짜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위해 헌신할 줄 알았던 용기를 가졌던 분들이었다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그 시기 광주에 대한 평가가 좀더 객관적으로 설득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