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삶이좋다

일탈과 도전

신천지행 2018. 5. 7. 09:21

강원도에서 올라온 친구가 전화해서 말한다.


"나 오늘 일탈하고 싶어"


"어떤 일탈?"


"오늘 너랑 이성으로 술한잔 하며 이야기하는거"


"그래 많이해라"


피식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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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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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은 벗어남이다.


일탈은 안정에 대한 도전이다.


사회가 진보하기 위해 일탈은 불가결한 요소이지만

규범과 조직에서 금기시 되는 안정을 해치는 행위이기도 하다.


보편적 사회적 규범과 도덕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탈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아웃사이더로 그들만의 또다른 규범과 도덕으로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들이 소수자라 일탈자로 보이는 것일 뿐 그들은 그 속에서 안정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

아웃사이더는 일탈자가 아니다.


오랜동안 지켜왔던

주어진 틀을 깨는 것이 일탈이다.


즉, 아웃사이더에서 보편적 일상으로 돌아왔다면

그는 일탈을 감행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조폭세계에서 살아가던 사람이 개과천선한다면

그것도 그 세계에 대한 일탈인 것이다.


일탈이란 도덕적이고 올바름에 대한 반항이 아니다.

안정되고 형식적인

규정적이고 반복적인 삶에 대한 변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탈에 대해 두려워한다.


갈릴레오의 바티칸에 대한 일탈은 지동설을 가져왔다.


그럼 모든 사람이 일탈을 해야하는 것일까?


일탈을 즐기는 유전자는 따로 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라도 일탈의 순간이 한번은 찾아오게 된다.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지나갈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고 각자의 판단이다.


일탈은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선택이며 도전이기 때문이다.


일탈로 맛보는 행복과 즐거움이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안정 속에서 느끼는 행복보다 크지 못하면

다시 기존의 틀로 회귀할 것이고

그 일탈에서 오는 행복의 크기가 더 크다면

일탈은 새로운 일상이 된다.


새로운 일탈을 받아드리는 것은 각자의 판단과 몫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신이 감당하는 만큼 받아드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억지로 일탈을 감행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감당할 수준의 일탈이여야 본인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떤 일탈이 좋은 일탈일까?


무조건 규범을 상시적으로 깨야하는 것일까?

사회나 기존의 틀을 단순히 불안정하게 만들 목적의 일탈은 분명히 지양되어야 한다.


폭력과 불안이 난무하게 만들려는 것은 일탈이 아니라 혼돈과

난잡함일 뿐이다.


일탈은 정교하게 설계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된 일탈이 좋다.


준비되지 않은 일탈은 일탈 속에서 새로운 안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때때로 여행에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그 속에 안주하듯이

때론 준비되지 않은 일탈이 우리에게 새로운 일상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 또한 자신의 몫이다.

새로움에 대한 적응력이 높고 새로움을 쉽게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어야

일탈이 자유롭다.


나는 일탈이 즐겁다.

일탈을 꿈꾸며 일탈의 순간이 다가왔을때

그 속에서 새로운 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 즐겁다.


더 많이 읽고 생각하고 새로움에 대해 설계하자

일탈이 즐거우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꼭 안정적인 삶을 추구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다른 일탈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