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행 2018. 7. 15. 20:31


#왼발

#낮술


건널목앞에서 발을 내딛으며 문득 왼발이 앞서나가는 것이 신경에 거슬린다.

언제부터인가 왼발은 항상 앞서있었다.


왼발!

왼발!

왼발!

하는 구호에 맞춰 걸어야 했던 시간들에 대한 기억때문에

왼발이 앞서나가는 것이 불편해졌다.


그런데 아무리해도 오른발이 나가지 못한다.


내 머리속에서 왼발이 앞서나가는 것이 싫다고 하는데도

왼발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먼저 나가고 있다.


내 발인 주제에 감히 내명령을 거부하다니

어떻게 해도 나가지 않는 오른발이 더 야속해진다.


오늘따라 걸어올라가는 계단에서 우측통행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낮술한잔 걸치러 들어가는 곳의 에스켈러이터조차 좌측통행을 강요한다.


아니~ 요즘 세상에 좌측통행용 에스컬레이터라니 이게 무슨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란 말인가


지하철 1호선의 좌측통행조차 일본의 영향이라고

2,3,4호선이후 나머지 지하철과 도로통행도 모두 우측통행으로 바뀐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좌측통행을 강요하는 에스컬레이터앞에서

2층을 올라갈 것인지 망설이게 된다.


그래도 저 위에는 맛난 술이 날 기다리고 있다.


입맛을 다시는 순간

왼발은 이미 왼쪽 에스컬레이터로 향하고 있다.


어쩔수없다.


오늘은 왼발에 의지해 살아가보리라

낮술에 취해 내려오면서 흔들리는 길위의 내 발이

왼발이 먼저였는지 오른발이 먼저였는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아마도 왼발도 오른발도 맘껏 취했는지

서로의 발걸음을 교차시켜가며 자기들끼리 놀고 있다.


내일부터는 기필코 오른발을 앞장세워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