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파괴 실패 -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에 대하여
1.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다.
어려서 부모님이 남들 집처럼 플라스틱 트리를 장식하기도 했고 이유도 없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던 때도 있었던 것 같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는 없었다.
어렵풋이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는 어려서 살았던 곳이 시골이라 동네 교회에서 집집마다 빨간 옷의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돌아다니며 선물을 나눠주던 청년의 모습이다. 진짜 산타클로스이거나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람으로 기억되기 보다는 아이들 등쌀에 괴로워하는 알바생의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친외가 모두 서당 훈장출신에 얼마전 돌아가신 작은 할아버지도 최근까지 성균관 유도회에 참석하실 정도로 열혈(?) 유교집안이어서 딱히 크리스마스라는 것에 대한 추억도 없고 성인이 되어 지금까지도 이국에서 들어온 종교색이 가득한 기념일에 대한 어색함을 가지고 있어 누군가와 연애시절에도 크리스마스 전날의 혼잡함을 피해 집에서 머물거나 공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며 지내기도 했었다.
오히려 성인이 된 지금에 와서 영화 속 히어로처럼 산타클로스의 존재가 진짜 있었으면 하고 바랄때가 있지만 이성적인 측면이 아닌 엘프와 요정 또는 우리네 선녀처럼 공상과 상상의 영역에 대한 즐거움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2.
크리스마스는 성탄절이라고 불린다.
성스런 탄생일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성스러움이란 대부분이 잘 알고 있는 예수의 탄생이다. 그 자체로 이미 종교적인 의미가 들어있기때문에 자료를 찾아보면 이 날을 휴일로 기념하는 나라는 유럽 중심의 몇몇나라 외에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같은 유럽국가라도 그리스 정교회의 영향을 받은 나라에선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1월 7일이라고 하니 생각보다 12월 25일을 기념하거나 그날 빨간옷입은 선물보따리 할아버지를 만날 확률은 더더욱 줄어들 것 같다. 유대교나 이슬람 문화권은 당연히 크리스마스가 존재하지 않고 불교국가에서도 기념되지 않으며 유럽이나 미국에게 지배적인 영향을 받은 나라가 아닌 이상 특별히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곳은 없다.
아시아권 국가중에서 서양의 식민지가 아니었던 나라치곤 드물게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종교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국가는 물론 미군정을 겪은 일본조차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진 않는다. 다만, 아무래도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다보니 연말의 흥겨움에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긴 하고 다양한 시즌 마케팅이 활성화 되어있다. 잘은 모르지만 자본시장을 도입한 이후 최근 중국의 상황도 다르지는 않는 것 같다.
왜 많은 나라 또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것일까? 정작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친 미국에선 크리스마스가 가진 종교적 색체때문에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다는데 올해도 내 주위엔 종교가 불교인 사람조차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인사하고 있다.
굳이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태양절이 지금의 성탄절이었을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기념하고 싶은 날이면 날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기념하고 기억하면 될 것이기 때문에 어느 날자이든 기독교인들에겐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는 메리(Merry, 즐거운) 크리스(Christ, 그리스도) 마스(Mass, 미사)라는 뜻이다. '즐거운 성탄 미사' 정도로 번역될 말인데 교회한번 가지도 않는 사람들도 흥겹게 미사에 동참하고 있다.
나에게 직접적인 의미가 없고 불필요한 흥겨움을 좋아하지 않아 티비 속 예능프로조차 보지 않는 나에겐 이 흥겨움은 불편하고 참을 수 없는 존재다.
어느 순간부터 남들을 따라 외치던 메리크리스마스가 나의 입에서 사라졌다.
상대방이 연말인사로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보내면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크리스마스가 지나서 연말연시 잘보내라는 답장을 보내곤 했다.
난 '크리스마스'가 죽어간 그 사람의 이상이 아닌 단지 성스러움으로만 기억되는 기념일이 싫다.
3.
산타클로스는 좋아했다.
영문을 몰라도 선물주는 사람을 싫어할 이유는 없으니 그냥 선물을 받는게 좋았다. 공짜선물이라서 좋은 것도 있지만 시기상 한해를 잘 보냈다는 선물같아서 선물의 값어치를 떠나 선물을 받을때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성 닐콜라오' 주교의 선행에서 시작되었다는 기원을 알고 나니 종교와 국가를 떠나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이어져 오는 것이라 여겨져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가 부르는 산타클로스는 성 니콜라오의 네덜란드식 발음으로 초기 네덜란드 이민자들을 통해 영어화되었고 크리스마스의 세계화와 함께 전세계에 퍼졌다고 한다.
겨울철 불우이웃돕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추위를 넘기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양말을 벽난로에 걸어두는 것도 니콜라오 주교가 아나콜리아에 살고 있던 세 자매를 도와주기 위해 굴뚝으로 떨어트린 금덩이가 벽난로에 걸어둔 양말 속에 들어간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우연히라고 하기엔 참으로 절묘한 전통이 되었다.
벽난로 문화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양말을 따로 걸어두는 경우가 많지는 않겠지만 어려서 더 큰 선물을 받기위해 큰 양말을 찾아내려고 했던 치기들이 떠오른다.
이런 산타클로스의 전통은 '성 니콜라오' 축일인 12월 6일에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가까운 시기에 진행되는 크리스마스와 통합되어진다. 예수님 탄생에 착한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전통이 왜 어울리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크리스마스는 다양한 전통을 흡수해 거부하기 어려운 축제가 되었던 것 같다.
산타클로스 전통에서 좀 아쉬운 것은 과거의 산타클로스는 착한아이에겐 선물을 주고 나쁜아이에겐 회초리로 매를 때리기도 했다는 전통이 어느 순간 일방적인 선물전달식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에게 자신의 아이가 착하게 느껴지지 않은 경우는 없었나 보다.
세 자매 이야기를 보면 분명 과거 동로마 제국시대 아나톨리아에서 활동하던 주교였는데 핀란드가 고향이 북유럽의 전통이 되었는지 그점이 제일 신기하다. 아마도 북유럽 어느 설화나 전설과 결합한 것은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지만 딱히 탐구해볼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북유럽에서 성행했던 전통답게 산타클로스는 빨간 코의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선물을 나눠주면 그 선물은 요정과 난장이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드워프나 요정은 북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존재이니 산타클로스 자신도 북유럽 설화의 한 부분으로 이해되야 맞을 것 같다.
4.
아이들은 미지의 존재를 좋아한다.
아이들은 아직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직관적으로 보이는 세상을 믿고 주변의 불확실한 존재들에게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 아직 성숙되지 못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요정이나 신비로운 존재를 통해 보완하고 싶은 욕망처럼 느껴지도 한다.
이제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같이 애니메이션을 볼때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라서 현실과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잘이해하면서도 밤12시가 되면 세상은 귀신들로만 가득차게 된다는 친구들의 말은 철썩같이 믿고 아빠에게 끊임없이 증명해보이고 싶어한다.
서양문화에 익숙해져있는 우리에게 이미 산타클로스는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하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 한해의 마무리로 자신이 원하는 산타클로스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새로운 한해엔 꼭 선물을 받아내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곤 한다.
2~3년전 우리집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기존에 어린이집으로 산타클로스가 방문해 선물을 주던 것을 몇몇 어린이집이 서로 품앗이해서 아이들 집에 개별방문해 선물을 전달하는 이벤트를 기획했었다.
한집한집 방문하면서 중간에 부모님들과 접선해 준비한 선물까지 챙겨 아이들을 만나다보니 뒤쪽에 방문하는 아이들은 예상했던 일정보다 시간이 많이 늦어지게 되면서 어린이집 담당자들부터 각 집의 부모님들과 아직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긴장감이 고조되어 가고 있었다.
엄마들 카톡방은 산타클로스가 어느집까지 왔는지 바쁘게 소식을 전하고 있었고 시간은 이미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왠지 모를 부모의 긴장감에 덩달아 심각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인근 아이집까지 산타클로스가 도착했다는 연락과 함께 준비한 선물을 들고 마중을 나갔다. 사인이 잘 맞은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집으로 찾아온 산타에 아이는 정말 눈이 동그래지도록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말도 못건내고 부끄러이 선물만 받아들었지만 산타클로스와 포옹만 한번 하고 보낸 것이 못내 아쉬고 늦게까지 자지않고 쫑알거렸다.
어느 집 아이는 감격에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날 우리집에 찾아온 산타는 우리 아이가 다니지 않는 다른 어린이집 체육선생님이었다고 한다. 20대후반이나 30대초반의 젊은 선생님이 어설프게 수염을 붙여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모습은 내가 어릴때 시골에서 만났던 그 산타클로스와 달라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분명 그 산타클로스가 주변의 누군가가 분장했다고 알고 있었고 지금도 그냥 선물하나 받은 정도의 기분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때와 뭐가 다른 것일까?
앞서 말한바와 같이 나는 오히려 성인이 되어 상상속에 산타클로스를 더 좋아하게 되었지만 어릴때 만난 가짜수염의 산타클로스를 진짜라고 믿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우리 아이도 진짜 산타클로스라서 기뻐한 것이 아니라 그 대리인이 전달한 선물이 산타클로스가 보내준 선물이라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어찌되었건 올해 우리 아이가 산타클로스에게 빌었던 소원은 '현금 3억'이었다. 아무리 돌잔치때 돈을 집었다고 해도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녀석이 현금 3억을 소원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맨날 돈없다는 이야기를 그리 많이 했던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아이는 3억으로 무얼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최근들어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말을 했었고 우리가 집을 넓혀 이사가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때문에 그런 이유일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가끔 아이가 믿는 진실이 궁금해진다.
5.
동심파괴자들이 있다.
소위 과학적 회의주의자라고 불리는 과학신봉자들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환경으로만 가득차길 원하는 그들은 사주팔자나 오늘의 운세, 혈액형에 따른 성격 같은 비과학적인 통계를 배격하고 창조과학과 같은 유사과학이나 정치적 편향을 위해 과학적 사실을 왜곡해 인용하는 것을 경계하며 감시하는 역활을 자처한다.
그들에게 산타클로스는 신비주의 그 자체이고 배격해야 할 존재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기적인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는 5살난 자신의 조카를 대상으로 산타클로스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하고 주로 유럽이나 기독교 국가이야기긴 하지만 가끔 해외토픽에 산타클로스를 부정하거나 그렇게 가르쳐야한다고 주장했다가 학교에서 해고당하는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도 있었다.
정말로 동심을 파괴하려는 괜한 심술인지 단지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사실을 알려주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어도 그들은 동심파괴자라는 별명을 얻었고 현금 3억을 아이에게 선물할 능력이 없는 나는 동심파괴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나 조차도 상상 속에서 즐기는 산타클로스인지라 매몰차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할 수 없었고 이전 산타클로스 전통과 캐롤의 노랫가사에 적혀있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주신다'는 사실과 그 우는 아이는 바로 부모님 말씀을 잘 안듣고 살아가는 아이에 해당된다는 논리적 어거지를 만들어 올해에는 산타클로스가 우리집에 오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선물도 없다고 연락받았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사전통보하였다.
그대신 아이에게 부모인 우리가 연말과 새해를 맞이하는 기념으로 평소 아이가 가지고 싶어하던 닌텐도 게임기를 사주기로 합의했다. 최근 몇주 일련의 사건들때문인지 의외로 아이는 의외로 쉽게 수긍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6.
크리스마스 이브 아이는 굳이 거실에서 자겠다고 때를 쓴다.
아마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오늘 산타클로스는 안와~"
미리 선수를 처놨다.
"왜? 왜 안와? 올수도 있지"
"올해 엄마 아빠말 잘 안들었잖아 착한일 많이 했어?"
"..."
"엄마 아빠에게 안오신다고 연락이 왔었어~"
"그래? 어떻게 보여줘봐~"
"비밀이야 어른들에게 오는 연락이 있어~"
"흥~ 그래도 오실꺼야"
"안오신다니깐 그래서 엄마 아빠가 닌텐도를 사주기로 한거잖아"
"그건 그거구..."
원래도 착한 아이가 되길 바라지 않았기도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면서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해져가는 아이에게 굳이 산타클로스가 필요해보이지 않았다. 앞으로도 굳이 착한아이로 살아갈 필요가 없게 이번 기회에 산타클로스와 작별을 고하려고 구상한 동심파괴 작전은 자꾸 측은함에 물들어 가게 되었다.
아이가 잠든 후 우리는 와인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게 되었고 산타클로스의 메시지를 하나 남기기로 결정했다. 아이 엄마가 고민 끝에 카드에 "올해는 방문할 수 없으니 내년엔 꼭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적어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었다. 엄마의 필체때문에 산타클로스의 메시지가 아니라고 생각할까봐 필체에 대한 고민까지 하며 작성한 카드였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카드를 받아들고 실망한 기색도 없이 엄마에게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아이는 그 메시지를 뭐라고 해석한 것일까?
7.
산타클로스를 대신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이와 함께 같이 할 게임을 고르며 주문하느라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이는 시종 옆에서 쫑알거리며 왠일로 제일로 좋아하는 딸기를 양보하기도 하는 너그러움과 애정을 표현하며 스스로 착한 딸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아빠는 착한 딸보다는 즐겁게 노는 딸이 좋다고 말하긴 했지만 산타클로스가 주는 선물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함께 고르는 것이 더 즐거운 상황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아 흥겹게 장바구니에 담다보니 아내에게 매년 연말마다 오는 지름신이 올해는 아이 선물로 대신했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어쩌면 산타클로스를 통해 작은 선물을 보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은 지출이었다. 결국 그냥 딸바보 아빠일 뿐인 것이다.
원하는 선물을 다 챙기고 오직 산타클로스의 방문여부만 궁금증을 남긴 채 잠들었던 아이는 아침에 눈을 뜨고 발견한 카드에서 읽은 메시지를 보고 산타클로스가 방문했었다고 확신하며 아침을 먹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엔 나에게 줄 수 없는 선물을 부탁했던 거야!"
아차 싶었다.
그자리에서 부정하기 어려워 그래 그럼 내년엔 꼭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자고 말하며 아내와 어이없는 웃음을 마주했다. 착한 아이가 아니어서 산타클로스 선물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던 우리의 말은 이미 무의미한 말이 되었고 아이는 내년에 또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기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더라도 착한아이가 될 필요는 없는데 산타클로스를 믿더라도 자기 생각이 강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결국 올해 동심파괴작전은 성공하지 못했고 산타클로스는 내년에도 재방문을 예정하기로 했다. 내년엔 어떤 선물을 바랄지 자뭇 궁금해지는 하루였다.
덧)
연말이라 여기저기 세일도 하는 게임기를 구매하려고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게임기는 별 상관이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원래도 타켓팅이 없는 일본제품 전체에 대한 불매운동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지고 부담만 크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역시 일본제품이 강세인 품목에선 불매운동 자체를 느낄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국내 최대 일본여행 커뮤니티라는 네이버의 네일동도 다시 조용히 오픈을 했다.
지난 몇달 우리는 어떤 시간을 보낸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