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일기> 싼마오, 지나북스

한편의 동화같은 이야기다.

글을 쓴 저자 싼마오는 대만사람으로 1943년 중국 대륙에서 태어나 1948년 부모와 함께 대만으로 이주해 대만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획일적인 학교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가정교육을 통해 교육을 받았다는 저자에 대한 설명처럼 참 자유로운 사고와 여린 감성 그리고 호기심과 사람에 대한 따스함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대만 첫 여행에서 느껴졌던 묘한 이질감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처럼 오랜시간을 중국과 대치하는 상황을 이용해 독재체제를 유지했던 대만에서 느꼈던 왠지 모를 친밀감이자 이질감에 대한 기억때문에 저자가 가졌던 획일적인 교육에 대한 한계와 환멸이 쉽게 다가온다.

여튼 저자는 대만을 떠나 여행하던 중 스페인 사람 호세를 만나 그와 결혼해 사하라와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 정착해서 살아간다. 이 책의 이야기는 사하라를 떠나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 정착해 살아가기 시작한 그 시기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곳은 아름다운 바닷가이자 적도 바로 위라 사시사철이 온화한 봄과 같은 날씨를 가진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북유럽 노인들이 연금으로 생활하며 여생을 마무리하러 살아가기 위해 찾아오는 곳으로 스페인 사람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더 많지만 정작 젊은이는 구경하기 힘든 동네다.

궁금해서 지도를 찾아보니 지브롤터 해협에 모로코 북쪽 서사하라 바로 위에 위치한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제도로 15세기부터 스페인이 지배해온 곳이라고 한다.

서사하라에서 일하던 호세와 함께 살던 싼마오는 사하라로 밀려온 전쟁의 물결에 밀려 피난처로 도망치듯 카나리아 제도로 이주했다.

이 글이 쓰여진 시기는 아마도 1970년대 중반 쯤일 것이다.

그 시기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아이도 없이 지내던 두 부부는 성격도 판이해서 유럽사람이지만 어려서부터 가부장적인 문화에 흠뻑 젖어 살아온 호세와 대만(중국)인 이지만 자유분방하고 약간은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싼마오의 조합은 기묘하다기엔 좀 어색한 조합이지만 호세가 싼마오에게 어떤 남자랑 결혼할꺼냐면서 밥은 배불리 먹여줄께라고 하자 싼마오가 이제부터 적게 먹을꺼야 라고 말하며 그날부터 부부가 되었던 <털보와 나>에서의 모습은 정말 배꼽잡고 웃게 만드는 사랑스러움이 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싼마오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해 가출해 대만으로 떠난 직후 가출한 부인을 돌아오게 하기 위한 호세의 눈물겨운 편지글로 채워진 <가출한 아내에게>에서도 잘 나타난다. 참 잘어울리는 한쌍이었구나 싶다.

유럽의 시어머니도 무섭긴 매한가지라 <나의 가정생활>에서 서사하라에서 죽을 고생하고 탈출한 아들의 상태는 묻지도 않고 시누이네 식구들과 휴양하러 카나리아 제도로 날아온 시어머니를 상대하는 싼마오의 모습과 그런 싼마오를 무심히 바라보는 호세의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의 어느 가정집을 연상시킨다. 특히, 싼마오가 아플때 아프면 그냥 쉬라고만 하고 아무일도 안하는 호세의 모습에선 내 모습이 그대로 투사되어 부끄러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꽃파는 여인>에서 나오는 천하무적 외판장수의 언변을 당해내지 못하는 모습은 코믹하면서도 정에 약한 두 부분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있다.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둘은 사이가 좋았고 병든 부모를 돌보느라 놀지도 못하는 다니엘을 챙겨주는 <작은 거인>에서의 모습이나 정신마저 혼미해져 가지만 자식들이 나몰라라해서 홀로 지내는 스웨덴에서 온 이웃의 마지막을 챙겨주던 <어느 낯선 사람의 죽음>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은 참 따뜻한 부부였고 이웃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게한다.

분명 치열한 삶에 대한 기록이고 때론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지만 나에겐 한편의 동화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프로필에서 소개되길 싼마오는 스쿠버다이빙 중에 호세가 사망해 9년여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대만으로 돌아와 48살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짧지만 두 사람은 동화같은 삶을 살았고 우리에게 이 글로 남겨져 기억될 것이다.

코로나가 풀리면 카나리아 제도에 가봐야겠다. 두 사람이 살았던 그 동네를 찾아가봐야겠다.

 

 

 

Posted by 신천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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