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찾기

어차피 헛소리 2018. 10. 1. 09:00


#길찾기


어려서 나는 지방직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녀야했다.


한도시에서 2~3년 정도 거주하고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반복하다보니 생긴 습관이 새로 이사한 곳을 탐방하는 것이다.


이사한 집을 중심으로 나선으로 원을 그리며 미로 속 생쥐처럼 골목골목 막다른 길을 부딪혀가는 일정한 반경안의 골목들을 이삼일 안에 걸어 숙지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 10살이 되던해 시골에서 나름 규모있는 중소도시로 이사를 하면서 아마도 우리 형제의 학업을 위해 가족을 두고 아버지가 다른 도시로 발령을 받으면 주말부부로 외지생활을 하는 것으로 바꾸셨던 것 같다.


결국 10살 이후 13살 때 마지막 이사로 같은 도시의 지근거리로 집을 옮긴이후 계속해서 같은 집에 거주하게 되면서 어려서 가졌던 골목탐방 습관은 '더이상 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이제는 새로운 곳에 가도 골목탐방은 더이상 하지 않지만 그 습관은 탁월한 길찾기 능력을 만들어 주었고 한때는 한번 지나간 길은 절대 잊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도 했었다.


기억력이 퇴화되고 있는 지금은 그 정도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전혀 낯선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쉽게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가거나 사람들이 자주 찾을 만한 식당을 찾는 능력을 만들어 주었다.


아직도 그 시절 걸었던 골목들이 어렴풋이 생각날때가 있다.

여러 모양의 담장과 낮은 지붕들 그리고 개소리나 어설픈 보도 블럭 같은 지금은 보기 힘든 것들이 기억의 심연에서 떠오르기도 한다.


다시 그 골목을 찾아가면 예전에 외운 기억이 떠오를까?


궁금해지지만 어려서 탐방했던 기억속 골목의 시작은 내가 살았던 집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다시 그 골목을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억을 잃은 아버지를 두고 어머니와 함께 그 골목을 찾으러가는 것도 큰일이라 좀더 일찍 기억을 되새겨 볼 껄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마 그 곳이 이미 많이 변화해서 그 흔적이 없어져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작은 도시들이었으니 지금의 내 고향집처렴 수십년이 지나도 그 골목은 그대로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더 늦기전 어머니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그 골목을 가보고 싶다.

앨범 속 빛바랜 골목들을 찾아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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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어차피 헛소리 2018. 9. 19. 22:00

#구름

"난 구름한점 없는 하늘은 매력이 없어 적당히 구름 낀 하늘이 좋아"

요즘 같이 구름 이쁜 하늘이 계속 되는 날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누가봐도 첫인상이 선생님같은 외모라고 개구쟁이처럼 말하지만 선생님도 아니었고 사람보단 책을 좋아하는 은둔형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여름으로 가는 길목 양귀비가 가득한 공원을 지나 한강이 바라보이는 밴치에 앉아 바람따라 흐르는 구름모양 맞추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비행기, 하트, 말, 토끼, ...

흐르는 듯 모양을 바꿔가며
어느새 우리도 구름을 타고 놀고 있었다.

이 구름을 타고 가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함께 여행을 가고 싶어"

"어디로?"

"그냥 어디든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그런 날은 오지 않아"

그런 날은 오지 않았지만
그 날을 기다리는 순간은 즐거웠다.

구름을 보면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그 위에 누워 푸근함을 느끼며 여유롭게 하늘을 바라보는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언제나 게으르고 모범적이지 않았던 나는 학창시절 강의실보다는 잔디밭을 사랑했고 바람이 시원한 날이면 어김없이 잔디밭에 누워 바람과 구름을 즐겼었다.

세월이 지나 '지천명'이 얼마남지 않은 지금
다시 하늘을 본다.

하늘의 뜻을 궁금해하며 살아왔던 시간이 과연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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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펀홈


펀홈 말그대로하면 즐거운집이지만 실제론 그리 즐거운 모습은 아니다.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를 아버지로 둔 남자가 되고 싶었던 여자의 이야기이다.


원래 펀홈(Fun Home)은 작품 속에서 '장례식장(Funeral Home)'의 약자이지만 화자의 집안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중의적인 의미로 사용했다고 느껴졌다.


작품 속 주인공은 어려서 부치(butch)라고 불리는 남자같은 여자아이였고 넬리(nelly)라고 불리는 여자같은 남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다.


대학에 와서 어느날 자기의 정체성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린 얼마 후 부모님은 이혼을 하고 아버지는 자살이 의심되는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의 죽음이 왠지 자신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주인공은 어린시절부터 쌓아온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고하게 되는데...


결혼을 해 자기 성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게이 아버지와 성장해서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딸의 이야기지만 가업을 이어받아 장례식장을 운영하면서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으로 살아가던 아버지의 모습은 여러가지면에서 그로테스크 하면서도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남편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던 엄마는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포기한 체 연극과 공부에 매달리며 살아가다가 딸의 레즈비언 선언과 함께 이혼을 하게 되며 아버지는 딸의 그런 모습이 자신의 영향은 아닌지 고민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구성만 보면 단순해 보이거나 진부할 수도 있지만 영문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 영문학 선생님인 아버지와 그의 재능을 물려받은 딸 답게 작품 내내 율리시스나 고전 영시와 같은 다양한 영문학 고전들이 인용되며 자신의 모습을 고전에서 나오는 장면과 비유하는 장면들이 나오며 작품의 품격을 높여준다.


작품 속에서 가족 여행으로 들린 뉴욕거리의 모습또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스톤월 폭동이라고 불리는 게이 폭동이 일어나 지금은 게이들의 성지가 된 그리니치 빌리지가 부모님의 젊어서 추억의 장소였던 점이나 그 인근에 숙소를 잡고 밤늦게 들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버지의 정체성에 대해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침일찍 사라진 남동생으로 인해 당황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신의 경험이 투영된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미국에서도 레즈비언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그래픽노블이라고 평가받는 <펀홈>은 작가인 엘리슨 벡델의 자전적 이야기로 발표 당시에 커다란 화제를 모으며 여러 상을 수상하였고 이 작품을 토대로 2013년에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올려지게 된다.

오프브로드웨이에서 호평을 받아 2015년 브로드웨이로 진출하여 그 해 토니상과 여러 다른 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뮤지컬로 성장하게 되어 2018년 올해는 영국으로 까지 진출하게 됬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참조)


작품 속 마지막 장면에서 성정체성으로 대화하는 아버지와 딸의 모습은 조금은 어색하면서도 자신을 솔찍하게 들어내는 대화였기에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들어내기 어려웠던 시대를 살아가던 아버지와 자신의 성정체성을 들어내며 살아가는 딸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생각꺼리를 던져준다.

언제나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는 어렵다.


기회가 되면 뮤지컬로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었다.







Posted by 신천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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